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칠리아 왕국 (문단 편집) ===== [[프리드리히 3세(시칠리아)|프리드리히 3세]]와 [[페트루 2세]] ===== 칼타벨로타 조약이 체결된 후, 시칠리아 왕국은 몇 년간 평화를 누렸다. 그러다가 1312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7세]]가 이탈리아로 남하하자, [[프리드리히 3세(시칠리아)|프리드리히 3세]]는 그와 동맹을 맺고 나폴리 왕국과 재차 전쟁을 벌여 레지오를 공략했다. 그는 나폴리로 남하하려는 황제와 합세하고자 토스카나 지방으로 이동했지만, 하인리히 7세가 1313년 8월 24일 부온콘벤토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시칠리아로 철수했다. 나폴리 국왕 [[로베르토(나폴리)|로베르토]]는 이에 보복하고자 시칠리아를 여러 차례 급습해 많은 피해를 입혔다. 1317년 양자간에 휴전이 맺어진 후, 프리드리히 3세는 북이탈리아 분쟁에 개입해 기벨린파(친 황제파)가 제노아를 공격하는 것을 돕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 세입의 일부를 몰수했다. 교황 [[요한 22세]]는 이를 응징하고자 1321년 프리드리히 3세를 파문하고 시칠리아에 성무 금지령을 내렸다. 1325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의 아들 카를로 휘하의 앙주 육군과 함대가 시칠리아로 쳐들어왔지만 조반니 데 키아라몬테가 이끄는 시칠리아군에게 팔레르모 인근에서 패배했다. 1326년과 1327년에 앙주군이 시칠리아를 잇따라 공격해 타격을 입혔다. 그러다가 [[루트비히 4세(신성 로마 제국)|루트비이 4세]]가 이탈리아에 개입하자 나폴리군이 더 이상 시칠리아에 신경쓰지 않으면서, 프리드리히 3세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334년에 선출된 교황 [[베네딕토 12세]]는 프리드리히 3세의 권리를 보장할 의사를 표명했지만,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그 사이, 조반니 데 키아라몬테가 왕과 사소한 일로 불화를 벌인 끝에 나폴리로 귀순했다. 프리드리히 3세는 앙주 가문에 대한 시칠리아인들의 증오를 끌어내 이를 토대로 단합된 국가를 건설하기를 희망했다. 초기에는 시칠리아를 잇따라 침략하는 앙주 가문에 대한 시칠리아인들의 분노가 극렬했기에 그의 의도대로 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앙주 가문의 편을 드는 교황을 견제하고자 기벨린 파(친 황제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자, 구엘프 파(친 교황 파)에 속한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시칠리아에 대한 무역 거래를 크게 줄여버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많은 시칠리아인들이 무역으로 먹고 살았기 때문에, 무역 거래에 저해되는 정책을 벌이는 왕에 대한 시선이 갈수록 나빠졌다. 게다가 나폴리 국왕 로베르토가 시칠리아 항구들을 끈질기게 봉쇄했기에, 시칠리아의 경제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333년 [[에트나 화산]]이 폭발하면서 기후가 악화되고 시칠리아에 전염병이 돌면서 많은 이가 목숨을 잃자, 시칠리아인들은 신이 프리드리히 3세가 저지른 죄를 묻기 위해 이런 재앙을 내렸다고 여겼다. 이렇듯 민심이 악화되던 1337년 6월 25일, 프리드리히 3세가 시칠리아 왕국의 수도 [[팔레르모]]에서 사망했고, 아들 '''[[페트루 2세]]'''가 시칠리아 왕위에 올랐다. 이것은 프리드리히 3세 사후 시칠리아 왕위가 앙주 가문에 돌아가기로 했던 칼타벨로타 조약을 위반한 것이었기에, 나폴리 왕 로베르토는 이를 보복하고자 시칠리아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단행하여 시칠리아 왕국의 영역에 속했던 리파니(1339년), 밀라초(1342년)를 잇따라 공략했다. 설상가상으로, 시칠리아에 전염병이 돌면서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고, 귀족들은 더 많은 권력을 쟁취하고자 강력한 사병을 거느리고 서로 충돌했다. 페트루 2세는 이 상황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고, 아내 엘리자베타에게 국정을 위임했다. 엘리자베타는 국정 운영을 마테오와 다미아니 팔리지 형제에게 맡겼고, 자연히 권력은 두 사람의 수중에 넘어갔다. 그러다 1340년 아테네와 네오파트리아의 공작이자 페트루 2세의 동생인 조반니가 두 사람을 몰아내고 권력을 쥐었다. 이후 시칠리아의 정국은 엘리자베타 왕비와 조반니간의 알력다툼으로 점철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